노파는 눈이 멀었다. 아이는 갓난아기일 때 주워 왔다고 했다. 아직은 손길이 필요할 나이라 사람을 부르는 거지만 그다지 신경 쓸 건 많지 않으니 걱정하지 말라고도 했다.

서너 살 정도의 그 아이는 창백했고, 입을 여는 법이 없었지만 그녀가 하는 말은 모두 이해했고 복종했다. 사실 아이가 할 일은 거의 없었다. 먹고 자고 얼른얼른 자라라, 라는 것이 노파가 바라는 전부였다.

진공 속의 물고기처럼 아이는 좁은 방 속에서 조용히 맴돌았다. 오로지 매일 밤 들리는 피아노 연주만이 그의 소리였다. 악보도 없이 하는 연주 역시 그처럼 조용했다.

 

집은 오래되었지만 근사했다. 통나무로 짜서 올린 거대한 3층집, 외부로 나갈 때는 통유리로 된 터널 모양의 통로를 한참 동안 지나가야 했다. 깊은 산 속이라 밤에는 무섭지만 낮에는 마치 빛 속을 걸어가는 느낌을 주는 곳이었다. 하지만 그곳까지 아이가 가 본 적은 없다고 했다. 지금까지 줄곧 자기 방에서만 지냈다고, 위험하니 절대로 가지 못하게 했다고.

 

어느덧 아이와 함께 지낸 지 1년이 되어 갔다. 달라진 것은 거의 없었다. 그녀의 일과도, 노파와의 서먹한 관계도, 아이의 행동과 외모도…

문득, 그녀는 아이의 생일이 언제인지 궁금해졌다.

“그 애는 생일이 너무 많이 지났어. 너무 많아서 기억이 안 나.”

노파의 기억은 이미 눈과 함께 어두워져 가고 있는 듯 보였다. 때로는 이성과 함께.

 

아이는 언제나처럼 방에서 피아노를 치고 있었다. 그녀는 집에서 찾아낸 초급 피아노 교본을 들고서, 아이의 의자에 나란히 앉았다.

“얘야, 선생님이 주고 싶은 선물이 있는데…

사실 이 악보는 너에겐 쉬운 거지만.. 일단은 선생님이 치면서 할게.

해볼까? 자…

‘생일 축하합니다…’”

 

아이가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래, 이건 생일을 축하하는 노래야.

생일이 뭐냐면… 태어난 날. 알지?

계속 해 볼게.

‘생일 축하합니다’…”

 

아이의 얼굴이 약간 굳어졌다.

그녀는 계속해서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태어난다는 건 기쁜 일이잖아.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생일이면 이 노래를 듣는단다.

그 날은… 오직 그 사람만을 위한 선물이 되는 거지.

너는 아직 한 번도 못 받은 것 같아서…”

 

갑자기,

아이가 얼굴을 작은 두 손에 묻고 통곡하기 시작했다. 웅크린 어깨가 난폭하게 꿈틀거렸다.

1년 만에 처음 듣는 목소리. 그러나 너무 처절해 아이 같지 않은 울음소리였다.

어찌할 줄 모르고 그녀는 가만히 움츠린 채 보고 있었다.

 

한참 만에 울음을 그친 아이가 고개를 들었다.

펼쳐진 악보. 순간 아이는 눈앞의 기호들을 어떻게 현실로 옮겨오는지 이해한 것 같았다.

아이가 두 손을 올리고 다음 소절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단조로운 멜로디에 화려한 화음을 입힌 바로크 식 해석이었다.

그녀도 다시 노래했다.

“사랑하는 너의…”

 

원곡의 페르마타 부분이 한없이 현란하고 기교적인 대위법으로 되살아나 웅장하게 달려갔다.

그 소리가 악보로 변해 그녀의 눈앞에 쏟아졌다. 아, 저건… 저 마주보는 음표들의 행렬은 마치 기다란 통로, 그래… 바로 저 빛의 통로와 같은 모양이야. 아이가 그 속을 달려가고 있어.

 

고요함 속에 낭랑하게 울리는 몇 초간의 트레몰로가 멈추고 처음으로 아이가 입을 열었다.

아아, 그것은… 이미 사춘기를 지난 소년의 음성이었다.

 

“생일 축하…합니다…”

 

아이의 눈물은 이미 말랐다. 그 짧은 시간 사이에 어느 새 아이의 표정은 달라져 있었다.

 

그걸 깨달았다 싶은 순간, 아이는 의자를 박차고 일어났다.

저만치, 유리 통로를 향해 겁 없이 맨발로 질주해 멀어져 가고 있는 그 뒷모습을 그녀는 그저 눈으로 좇으며 서 있었다.

이윽고 빛이 아이의 형체를 삼켰고, 그녀는 더 이상 바라볼 수 없어 얼굴을 가렸다.

 

그래,

너는 길을 알아.

계속 달려가렴. 멈추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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