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째, 그의 목소리는 해당 구간을 지날 때마다 해당 멘트를 반복하는 기계음 같았다. 정확히 계산된 목소리의 톤, 속도, 억양, 발음, 비문이나 망설임도 흐트러짐도 없는 문장 구성, 최상급의 경어체까지 언제나 한결같다. 로봇처럼 굳어진 시선과 표정에 그나마 인간의 느낌을 부여하는 것은 미간의 주름뿐이었으나, 이마저도 감정이나 안면근육의 움직임과는 이미 상관없는 요소인 듯했다.
여자는 최대한 등을 곧게 펴고 어깨에서 힘을 빼려고 노력했으나, 핸들을 잡은 두 손은 경직되어 거대한 차체가 불안정하게 흔들렸다. 그는 안전벨트 대신 한 손으로 몸을 지탱한 채, 나머지 손으로 핸들 윗부분을 잡고 묵묵히 앞을 보고 있었다. 여자가 꽉 잡은 핸들은 번번이 그의 주의깊고 조용한 조작에 끌려가고 밀려왔다. 더불어 민감한 기계의 주행 방향도, 그에 따라 여자의 중심축도. 극도로 단순하고 정적이지만 스스로는 예측할 수도 통제할 수도 없는 움직임이었기에, 무엇보다도 시종일관 자신의 몸짓에 남자의 모든 주의가 집중되어 있는 상황이었으므로 여자는 당황스러웠다. 그렇게 한 시간 동안 두 사람은 서로의 긴장 상태와 운동 에너지의 흐름을, 함께 잡은 핸들을 통해 감지하고 주고받는 모양새로 나란히 앉아서 달리는 중이었다.
교차로에 진입하려던 중 여자는 페달 조작이 아직 서툰 데다 점점 긴장이 되어, 시동을 연속해서 두 번이나 꺼뜨렸다. 그는 당황도 재촉도 없이, 3일 동안 구사해 온 그 모든 문장들과 다름없는 톤으로
“어서 시동을 켜십시오.”
라고 말했다. 이어 두 번째에도 똑같이.
무사히 상황을 벗어나 다시 어제와 같은, 그제와 같은 신호등과 횡단보도와 과속방지턱을 지나면서 그는 어제처럼, 그제처럼 똑같은 구간에서 똑같은 요구를 했다. 브레이크 페달을 먼저 밟아서 속도를 줄이십시오. 클러치를 끝까지 밟으십시오. 브레이크 페달을 같이 밟습니다. 정지하시고 기어를 중립에 놓으십시오. 다시 기어를 2단에 넣으시고 클러치를 서서히 떼시면서 출발하십시오.
코스를 지나는 동안 이런 상황은 지겹게도 반복되었고, 그럼에도 아직 여자의 몸은 익숙하게 맞추어 움직여지지 않았다. 애를 쓰며 발로 페달을 더듬던 여자는 문득 뭔가를 감지했다. 지시사항이 나오기 0.5초 전에 이미 페달들이 저절로 움직이고 있다. 말끔한 구둣발이 옆자리에서 브레이크 페달과 클러치를, 말보다 빠르게 무의식 혹은 자동적으로 어쩌면 규칙적으로 또는 본능적으로 밟고 있었다.
멍하니 보던 여자는 다시 페달에 발을 얹었다. 이번에도 지시가 나오기 전이었지만 페달이 저절로 쑤욱 하고 들어갔다. 말끔한 구두를 벗어던진 발이 여자의 것을 누르는 것마냥, 그 힘의 강도와 속도, 방향은 마치 체온까지 얹은 듯 여자에게 전달되었다.
C코스의 끝이었다. 차는 작은 공원 주차장으로 올라갔다. 잠시 차를 세워놓고 시동을 끄자마자 여자는 익숙한 기억이 어제처럼 그제처럼 온 몸을 덮치려는 걸 느꼈다. 억지로 여자는 그것을 떨쳐냈다.
“이제 D코스 시작입니다. 출발하십시오.”
어서 공원을 나와 큰길로 접어들고 싶다. 빨리 달려가고 싶다. 순간, 그동안 유지했던 최소한의 평정심이 무너지고 짧은 운행지식마저 모조리 쏟아져 뒤섞이는 것을 느꼈다. 얼빠진 듯이 핸들을 꺾으면서 기어를 철컥거렸다. 갑자기 차체가 미끄러지면서 심하게 기우뚱했다. 순간 그가 여자의 손목을 잡았다.
왜소한 키와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이 따스하고 두툼한 손이 날선 팔목뼈에 와 닿았다. 남자의 눈빛이 흔들렸다. 짧지만 충분했다. 그래 나는 저 눈빛이 뭔지 알 것 같아. 그건 어떻게든 좆이나 쑤셔박으려 달려드는 남자새끼들의 것과는 다르지. 이 손아귀의 의미도 나는 알아. 이건 날 잡아채 눕히겠다는 뜻이 아니지.
아 이젠 정말 지겨워. 언제나 똑같았지. 이 놈이고 저 놈이고, 그 짓밖엔 할 줄 모르는 병신들이었지. 그래 이제 됐어. 빌어먹을 몸뚱아리가 전부인 관계 같은 건. 이걸로 됐어.
평소의 얼굴로 돌아간 그가 평소처럼 말했다.
“커브길에서는 변속을 하시면 안 됩니다.”
“네 알겠습니다.”
어제처럼, 그제처럼 변함없는 톤으로 여자도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