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고기를 소금에 절일 생각이었다. 그러나 지금 너무도 허기져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정오였다. 이미 열여덟 시간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그는 엉망이 된 부엌 한구석으로 들어가 버너를 찾아냈다. 물도 가스도 전기도 나오지 않는 지금, 부탄가스라도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피를 뺄 겨를도 없이 우선 팔뚝살들을 잘라 팬에 구웠다. 지방이 녹고 살코기가 구워지며 식욕을 동하게 하는 냄새를 풍겼다. 이왕 먹는 것이니 잘 구워야 하리라. 그는 젓가락을 들고 팬 가득히 늘어놓은 고깃점들을 열심히 뒤집으며, 한편으로는 익은 살점들을 집어 후후 불어가며 요동치는 뱃속을 차츰 가라앉혔다.

한 시간도 안 되어 그는 배가 불렀고 만족스러웠다. 이젠 미지근할 뿐인 냉장고 속에서 남아 있는 물을 꺼내 한 컵 마셨다. 아직 마실 것은 좀 남아 있다. 생수 한 병 반, 맥주 한 캔. 그러나 내일을 넘기지 못할 것이었다. 엊저녁 바람이나 쐴 겸 가게에 들러서 뭘 좀 사 오지 못한 것이 후회스러웠다.

지금은 이미 늦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TV를 틀었을 때 전원은 켜지지 않았고, 일상적인 모든 공급들이 갑자기 멈춰서 버린 것을 감지한 그 순간 동네 사람들도 때를 같이하여 이 심상찮은 사태를 눈치채기 시작했다. 정말 전쟁이 난 것일까? 그래, 요즘 매일같이 그런 소식이 들려 왔잖아. 에너지가 끊기면 틀림없이 전쟁이 발발한 증거로 봐야 한다고들 했었다. 하지만 핸드폰도 터지지 않는 이 산동네에서 무슨 수로 확인을 한다? 공격은 곧 여기에도 미치겠지만 아무도 대책을 세워 놓지 않았다. 어쩌지? 어쩌지? 다들 술렁거렸다. 우선은 식량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다음 깊은 굴을 파고 숨어 있는 게 그나마 상책이지 않을까? 가만히 손 놓고 앉아서 개죽음을 당할 수는 없어…!

마을의 유일한 구멍가게 주인인 할머니는, 아침부터 동네 사람들이 들이닥쳐 물건을 마구 가져가는 데 놀라 깨었다가 혼잡통 속에 알 수 없이 죽고 말았다. 친근하던 애엄마들과 아저씨, 어린애들까지도 몰려와 아무거나 닥치는 대로 쑤셔넣었다. 이 가게가 생긴 이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재고 없는 완전매출이었다. 오쭈기 진라면, 서주 아이스쮸, 맛기차콘, 빼빼로, 좋은느낌 생리대, 보해소주, 로케트 밧데리, 비비안스타킹 등등.

그러나 그는 타이밍을 놓쳐 집안에 아무 먹을 것도 들여놓지 못했다. 사실 공황상태에 빠진 것은 그뿐이 아니었다. 돼지가 있는 집은 돼지를 잡았고, 사람이 있는 집은…사람을 잡았다.

그는 이웃들이 혹 자기도 공격할까 두려워 문을 걸어잠그고 세간들을 한곳에 몰아 엄폐물을 만들기 시작했다. 공격용 도구로 쓰려고 뒤뜰에 나가 돌도 몇 자루 주워 왔다. 그러나 두려워해야 할 것은 이웃이 아니라 언제 쳐들어올지도 모르는 적군들이다. 이미 이웃들은 식량 비축을 위해 서로를 죽이고 있으니, 결국 살아남는 소수만이 고기를 챙겨 가지고 산 속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나도 그 소수가 될 테다. 그런데 식량은 어떻게 구해야 하나? 그 때, 문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나야, 문 열어 줘, 너무 무서워…여자친구. 부드럽고 섬세한 속살. 그는 커다란 돌 하나를 안고 문을 열었다. 두려움이 반가움으로, 곧 의아함으로, 이어 다시 공포로 순식간에 바뀌어 드러나는 그 눈빛을 보며 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머리를 내리쳐 거꾸러뜨렸다. 뒤뜰의 도끼를 가져와 일말의 안도감과 기쁨으로 관절마다 내리쳐 토막을 냈다. 목, 어깨, 팔, 허리, 다리. 그는 이마의 땀을 씻으며 의자에 몸을 맡겼고, 식탁에 엎드려서 깜박 잠이 들었다가 일어나 비축식량으로 만든 첫 번째 식사를 했다. 그리고 부엌 아무데나 소변을 갈긴 뒤 벌써 어두컴컴해진 방으로 들어가 쓰러지듯 다시 잠이 들었다.

 

아침햇살에 반쯤 잠이 깬 그는 늘 그렇듯이 손을 뻗어 TV를 켰고, 언제나처럼 뉴스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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